“당신 때문에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된다면 10명이 100명 되고 100명이 1000명 되는데 우리한테 위협이 되겠나 안 되겠나. 우리는 유일하게 수령님(김일성)만 믿고, 수령님이 우리 신인데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면 그건 당연히 반국가 행위지.”
북한에 735일 동안 억류됐던 케네스 배 선교사에게 북한 보위부(우리의 국가정보원과 유사) 조사관이 한 말이다.
2010년 북한을 처음 방문한 배 선교사는 ‘네이션 투어스’라는 여행사를 세워 2011년부터 23차례 동안 300여 명의 다국적 관광객을 데리고 북한에 들어갔다. 표면상으로는 북한 전문 여행사였지만 ‘조선 사랑’이라는 주제로 기독교인들을 모아 북한에 가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종의 단기 선교 여행을 진행했다.
23번째 선교 여행을 떠났던 2012년 11월 실수로 북한에 들고 간 외장하드가 문제가 돼 북한 보위부에 체포됐다. 외장하드에 있던 북한 촬영물과 선교관련 자료가 체포의 원인이 됐지만 재판에선 북한에서 예배와 기도를 한 종교 행위 또한 국가전복음모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2014년 11월, 만 2년 만에 풀려난 배 선교사는 아직도 북한 선교에 힘쓰고 있다. 한국에서 느헤미야글로벌이니셔티브(NGI)라는 국제단체를 세우고 북한인권 개선 활동을 하고 있는 배 선교사를 최근 서울 신정동 NGI 사무실에서 만났다.
북한은 최근 미국의 군사적 위협이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킨다며 연일 미국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지만 배 선교사는 군사적 분야보다 북한 당국이 두려워하는 것이 ‘종교’라고 지적했다.
배 선교사는 “억류돼 있을 때 북한 간부가 ‘미국의 핵무기는 우리(북한)가 쏘지 않는 한 미국이 먼저 공격할 일이 없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 하지만 당신 같은 선교사가 종교를 들이 밀어 사상을 오염시키면 사회가 변하고 결국은 우리가 망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칼 마르크스가 헤겔법철학비판에서 밝힌 것처럼 북한 당국은 종교를 주체사상 및 유일영도체계를 흔드는 ‘인민의 아편’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배 선교사는 “북한에 여러 차례 들어가서 북한 주민들을 직접 만났고 또 지금도 많은 탈북민을 만나고 있지만 예수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을 아직 못 만났다”며 “북한에 주체사상이 성립되고 교회 말살 정책이 시작되면서 예수의 이름도 함께 지워졌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수령이 신으로 숭배되면서 수령 외에 다른 신은 말살해야만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래는 배 선교사와의 일문일답]
– 북한에서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하는 주민들에 대해 알고 있나?
“중국에서 일할 때 우리에게 훈련받은 분들이 북한에 들어가 교회를 세우고 모임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처럼 예배당이 따로 마련된 건물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은 숫자라도 비정기적으로 비밀리에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탈북 후 중국에서 생활하다가 종교를 갖게 돼 북한으로 가서 신앙을 이어가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북한에서 신앙인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일까?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이 유일한 종교이고 수령을 숭배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성경을 소지했다는 자체가 국가를 전복하려 한다는 정치적 중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신앙은 큰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조직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수령 외에는 신을 섬길 수 없는 것이다.
동방의 예루살렘이었던 평양에서 기독교를 말살하고 장대현 교회가 있던 자리에 김일성 동상이 세워졌다. 김일성 광장이 있는 곳도 사실은 미국인 선교사 마을이 있던 곳이다. 조부모에게서 부모에게로 또 다른 자녀에게로 비밀리에 복음이 전해 내려오는 그루터기 신앙이 있다고 해도 차마 다른 가족에게 예수를 믿는다고 말할 수 없는 사회가 됐다.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이 북한 사회의 현실이다.”
– 최근에는 다양한 형태로 성경이 북한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들었다.
“많은 분의 노력으로 현재에도 북한으로 성경이 들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CD나 DVD 형태로 성경이 들어갔는데 지금은 SD카드나 USB로 성경과 기독교 서적들이 들어가고 있다. 성경을 받게 된 북한 주민들은 그것을 비밀리에 지켜나가기 위해 어려움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듣지 못한 세계를 알고 싶은 욕구도 큰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는 암암리에 성경이 장마당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얘기도 듣고 있다. 우리 단체(NGI)에서도 한 달에 한 번 서해의 조류를 이용해 성경과 쌀, 편지를 써서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고 있다. 작년에 1300개의 쌀과 성경을 보냈고 올해는 3000개를 보내는 게 목표다. GPS를 넣고 보냈을 때 북한으로 도착한 것을 확인했고 일부 탈북민들을 통해 황해도 쪽에서 쌀과 성경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 북한의 종교탄압, 김정은 시대에 더 심해졌다고 볼 수 있을까?
“김정은 시대에 와서 종교 활동에 대한 감시나 탄압의 강도가 낮아졌다는 어떠한 근거도 찾을 수 없다. 북한 당국에 의해 주민들에게 이뤄지는 종교 탄압을 정확하게 본 적은 없지만 북한 선교 활동을 하며 들려오는 바에 따르면 정치범 수용소에 상당수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수용돼 있고 그 안에서 또 전도를 하며 기독교인이 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현재도 북한 주민의 종교 생활에 대한 악행과 탄압은 자행되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몸부림치는 북한 사람들에게 목소리가 되어 주고,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 북한에 억류된 기간에 북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적이 있었나?
“직접 전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게 됐다고 생각한다. 집에 갈 권리를 내려놓겠다는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내 양을 먹이라는 마음을 주셨다. 그런 마음으로 계속 기도하면서 처음에는 나를 수인번호 103번으로 부르던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는 나를 “목사님, 얘기 좀 합시다”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고민들을 털어놨다. 부부 상담, 자녀 고민, 경제적 고민 등 여러가지 얘기를 들어주면서 그들이 마음을 열게 된 것 같다.
내가 나오면서 교화소 소장하고 악수를 하는데 그분이 딱 한 마디 했다. “또 봅시다” 눈물이 글썽글썽한 모습으로 인사를 하고 나올 때 내가 그곳에 있는 동안 하나님을 믿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간접적으로 하나님이 드러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북한에서 신앙인이 많아진다면 그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북한이 처한 어려움이 많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소망이 없다는 것이다. 체제에서 소망이 없고 가정에 소망이 없다. 그래서 가정이 깨어지고,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그들이 올바른 부모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게 큰 어려움이라고 생각한다.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삶과 사회, 민족이 건강해지는 토대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힘들게 살아도 소망을 갖는다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당당함이 있다면 삶이 건강해지지 않을까. 전 세계인이 북한 주민이 자유롭게 예배하는 날이 오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들이 소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편집자주 : 평양은 과거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릴 정도로 기독교인이 많은 도시였고 김일성 역시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교회에 다녔고 세례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45년 분단 이후 북한은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규정하고 반종교 정책을 폈다. 김정일 정권 이후에는 기독교인들을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고 공개 처형하는 등 인권 탄압 행위로 이어지고 있다. 김정은 집권 8년차. 현재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 탄압의 실태를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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